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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수집 소감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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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수집 소감




1, 문화재 수집은 보물찾기


  공산품의 구입은 필요 상품을 살 돈이 준비되는 대로 전문점을 찾아가면 제조 회사별, 상품의 성능별, 가격대 별로 고를 수 있지만 문화재의 수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재 보고 확신이 없어 밤새워 서적을 뒤져 연구하여 오늘 가면 팔리고 없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전혀 연구가 없는 상상 밖의 유품을 만나 당황할 때도 있지요.


기형이나 빛깔이 조선 초기 유품인 듯하여 주인에게 물으면 조선 말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값은 초기 값을 부릅니다. 비싸면 안 사면 된다는 태토를 취하지요. 주인이 시대를 몰라서가 아닙니라 초기를 말기라 하고도 받을 돈만 다 받으면 됩니다. 초기라고 팔았다가 후일 초기가 아니라고 물려 달라는 시비를 마기위한 未畢的故意의 예방책입니다. 문화재의 시대 추정에는 이론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재 수집에는 이런 상식 밖의 경우가 있으니 수집자의 눈으로 선택이 절대적으로 팔요 합니다.


 


2. 유품에 거는 기대


필자가 주장하는 도자사 왜곡 이론에는 확실한 典據를 제시했지만 지금은 異端視 되고 있습니다. 필자의 주장을 미술사학회의 홈페이지에 실었더니, 읽은 회원의 수는 수천 명에 달하지만 反論 제기는 없습니다. 反論이 없으면 공감이 있어야 하는데 공감도 없습니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까? 이는 해방 후 60여 년간 왜곡된 도자 사에 물든 사람의 수가 많으니 몇 사람의 공감으로 지금의 왜곡을 극복하기에는 勢不足임을 말 하는 것일까? 그래도 오래지 않아 공감대는 형성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확신의 근거는 도자 사 학계로 진출하려면 학위 논문이 필요하고 논문을 쓰자면 발굴된 전거 사료를 제시치 않고는 논문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왜곡된 눈으로 보면 이 유품이 중국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과 허섭스레기가 많아 보일지 모르나 도자사가 바로서는 날이 오면 귀중품으로 승화되어야할 유품이 있으나 설명 따로, 유품 따로 서술하기보다 유품의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것이 理解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사진 옆의 특기 란에 기술하였습니다.


 


3. 역사(도자사)바로 세우기 운동에 동참을


조선을 강점한 일본은 식민지 정책의 조기 정착을 위해 조선 민족을 卑下하는 일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사 왜곡은 周知 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에 의하여 창시된 도자 사는 더욱 심하게 왜곡 되었습니다.


해방 당시 도자 사를 모르든 우리는 일본인의 연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傘井周一郞가 쓴 李朝染付를 인용하면서 도자 사를 시작하여 그 이론을 오늘까지 발전 시켜 왔습니다.


李朝染付의 골자는 당시 중국과 조선은 主從 관계에 있었으니 중국의 청화백자가 찬란한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시들 무렵 청화백자의 기술을 조선에 移讓하였으니, 조선 청화백자는 중국의 모방이라고 주장하여 明磁模倣說을 성립시켰습니다. 이 이론이 지금의 도자사입니다.


침략자들의 주장이라도 연구가 學理的으로 모순 없는 연구라면 쓰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傘井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 없이 침략을 목적으로 조작된 이론입니다.


필자가 최근 발굴한 사료는 기존[傘井]의 주장과는 정 반대의 사료입니다, 즉 중국은 이웃 나라가 청화백자의 수출 경쟁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청화 안료의 수출을 금했다는 사료입니다.


傘井의 주장에 새로 발굴된 사료를 代入하면 모방설이 창작설로 바꿔야 하는 것이 우리 도자 사의 진실입니다.


이재부터는 우리는 學理的으로 正確典據에 의한 연구로 왜곡의 역사를 벗어나야 합니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역사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나라와 主從 關係에 있던 조선이 명의 무역 정책을 외면 할 수 없으니 國用 磁器는 국내산 토청인 하엽록(荷葉綠)을 썼을 것이나 민간에서는 청화 안료를 밀수로 구해다가 중국 관원의 눈에 뜨이지 않게 숨어서 청화백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 청화백자는 중국 도자 기술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창작된 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이 국보176弘治 銘 松竹文壺입니다.


명나라에서 청화 안료의 수출을 금지한 사료는 중국 大明律, 일본 학자의 논문에도 있지만, 우리의 中宗實錄361228의 기사에도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명백한 典據에 의하여 우리 도자 사는 바로 세워 진다고 확신을 합니다.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입니다. 필자는 도자 사가 바로 설날이 멀지 않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쓸 논문은 이 사료를 인용 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자사가 바로 서는 날을 앞당기는데 박물관이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01466


백부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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