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의 수집 목적
粉靑沙器 一部는 世稱 張英子 事件과 관계가 이는 유품이다.
필자가 어느 골동 가게에서 유품을 유심이 살피고 있을 때 주인이 전하는 말이다. 張英子가 수집한 문화재를 국가에서 환수하여 경매에 붙었을 때 흘러나온 물건아라고 하였다. 필자가 경매에 참가치 않았으니 사실은 모르나 수집 실황을 진술하는 과정이니 밝혀둔다.
張英子가 수집할 때는 珍品으로 고가를 지불했을 것이나, 경매 시는 僞作(가짜)으로 둔갑한 유품이다.
필자가 僞作의 근거를 묻자, 店主는 이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값을 깎아 주겠다고 매달렸다.
도자기의 형식(굽이 낮다)이 조금 다르다고 하여 업계에서는 진품이 아니라고 판정한다.
세인들이 모두 가짜라는 물건에 현금을 지불할 수가 없어. 고려청자 국화문 매병(1천 5백만 원 호가 품)과 맞바꿨다.
필자는 업계에 떠도는 근거 없는 낭설을 믿지 안았다.
도자기의 시대 구분은 형식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유물의 酸化度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물의 형식은 지금 만든 모조품이라도 형식에 맡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의 산화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가 없다.
불순한 저의로 화공약품으로 산화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산화에는 화약 냄새가 나고 또 도자기의 피부(유약)에 손상이 온다.
이 유품을 위작으로 본다면 언재 만든 물건으로 보아야하는가? 라고 물으니, 만드는 것을 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아느냐고 궤변을 토한다.
지금 현물 시장에서 眞,僞를 판별하는 기준은 일인들이 1945년 이전 조선에 나왔던 일본 골동상인들이 본국(일본)에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하여 官司銘이 새겨진 유품을 기준으로 정한 례가 지금껏 전해지는 것이지 우리나라 상인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분청사기의 진위에 관하여 연구된 바는 없다. 학계에서 이론적 근거 제시가 없으니 업계에서는 傳習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형식(굽이 조금 낫다)이 조금 다른 뿐 산화도나 본체의 형식이나 받침 모래의 질까지 차이가 없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유품을 모두 위작(가짜)이 라고 하는 지금의 도자사는 유품의 가치로 따진다면 국가적 손실은 엄청난 액수에 이를 것이다.
지금 업계의 판정에 확실한 기준은 없다. 있다면 내 눈으로 보기에 가짜로 보인다는 것이지 분명히 제시할 이론적 근거는 없다.
지금 僞品(가짜)라고 하는 粉靑沙器를 살펴보면 기형(굽이 조금 낮고)이 다르다는 선입견으로 유약이 다르게 보일뿐 酸化度는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기형일 뿐이다.
기형은 왜 다를까? 분청사기는 당초부터 두 종류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유는 官司에 납품하는 것과 사대부 가정에서 쓰는 그릇을 구별하여 만들지 않았을까? 그 例를 『世宗實錄』에서 보면(“대궐 안에서 항상 칠기(漆器)를 사용하니, 부서지기가 쉽고, 또 른 사람이 바꾸어 가기도 하니,,,,<세종 4년(1422) 3월 4일(신유)>)
17 분청사기에 官司銘을 각인하여 貢納토록한 재도의